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2016.04.25 15:22 - 세르엘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떤 말로 시작해야할지, 솔직히 감조차 오지 않는다. 영화의 줄거리를 그대로 풀어놓자니, 그렇게 딱딱한 영화는 아닌데, 하는 느낌부터 들고, 또 감성에 젖어들어 몇 글자 두드려보자니, 솔직히 말하자면 그렇게 깊은 감성에 젖어들지 못하기도 했고. 참, 미묘한 느낌의 영화다, 싶었다.


생각보다 팬층이 훨씬 두꺼운 영화 같았다. 영화를 다 보고나니, 왜 그런지 대충 이해는 갔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면, 두꺼운 팬층을 이해했다 뿐이지 내가 그 두꺼운 팬층에 속하게 된 것은 아니었다. 많은 영화를 봐온 것은 아니지만, 직감적으로, 아, 이 영화는 한 번으로 해결될 영화는 아니구나, 싶었다. 이 영화는, 한 번 본다고 해서 그 모두를 알 수 있는 영화는 아니구나. 그리고 어쩌면, 나는 이 영화의 팬이 절대 될 수 없을지도 모르겠구나.


영화는 걷지 못하는 장애인, 조제와, 그녀를 우연히 만난 대학생, 츠네오의 이야기다. 이 영화는 상투적인 감동을 그려넣으려 노력하지 않는다.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뛰어넘을 수 없을 것처럼 보이는 장벽을 넘어서는 그런 멋진 사랑이야기가 아니다. 하물며 장애인을 소재로 다룬 숱한 영화처럼 그들의 노력으로 그런 장벽을 넘어서는 모습은, 단언컨대 단 한 줄조차 그려지지 않는다. 


네이버 평점이었는지, 아니면 왓챠 댓글이었는지, 어디선가 그런 평을 봤다. 이건 특별한 사람들의 일반적인 사랑 이야긴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일반적인 사람들의 특별한 사랑이야기더라, 하는 평. 그렇지만 알고 보면 이 이야기는 역시 일반적인 사랑이 아닐까. 이 영화의 분량 할애는 로맨스 영화라고 하기엔 조금 묘하다. 사실 로맨스, 라는 단어로 분류해도 될지 모르겠는 영화이기도 하고. 여튼간에, 이 영화는 분량의 대부분을 둘의 만남에 할애하고, 둘이 사랑하며 보내는 시간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이 영화에 대한 악평의 상당수는 영화가 짜여진 맛이 없고 길게 늘어진다는 것이었는데, 아마 일본 영화 특유의 감성과 함께 이런 부분이 작용했기 때문일 터다. 


그렇기에 더더욱, 관객은 이 영화를 보면서 조제와 츠네오의 사랑보다는 둘의 만남과 이별에 주목할 수밖에 없다. 굳이 말하자면 둘의 연애과정을 담은 얼마 안되는 부분은, 곧 둘이 이별을 직감하고, 그들 나름대로의 이별을 위한 준비를 하는 과정이었을테니까. 츠네오는 조제를 집에 소개하는 것을 단념한다. 그렇지만 그 단념이 모든 것의 끝은 아니었다. 비로소 단념한 이후에야, 이 영화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면 중 하나인 바닷가 장면으로 이어진다. 조제는 물론이고 츠네오의 웃음은, 츠네오의 행복은 아마 거짓된 것이 아니었으리라. 그러한 여행의 종막에, 조제는 잠들었는지 아닌지 모를 츠네오에게 그를 만나기 전의 심해로 떨어져, 바다 여기저기를 뒹굴거리는 처지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라며 말을 건넨다. 


사람이란 그런 동물인가보다. 시작할 때는 언제나 영원할 것임을 자신하지만, 동시에 시작하면서 곧 이별을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 다를지도 모르겠지만, 나 역시 어떠한 감정 앞에서 이 감정의 영원함을 자신하기 보다는, 이 영원함은 어디서 어떻게 끝이 날까라는 것을 먼저 생각할 수밖에 없으니까. 특히나, 그 끝이 정해져있다면 더더욱.


이 이야기는, 앞서서 말했듯이 특별한 사랑이 아니었다. 여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이별하고, 그들의 삶 속에서 서로를 지워낸다. 둘은, 스스로의 말대로 ‘담백하게’ 이별했다. 다만, 남자인 츠네오는 그 이별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고, 여자인 조제는 그 이별을 나름대로 착실히 준비해온 차이만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우리의 서술자는 어디까지나 츠네오이고, 덕분에 이별 후의 조제의 모습은 제대로 그려지지 않는다. 조제도 아마 아파했겠지. 그렇지만 준비하지 못했던 츠네오처럼 무방비로 무너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반면, 츠네오는 무방비로 무너진다. 그의 마지막은 절규였다. 나의 삶 속에 한 자리를 내줬던 사람이 없어진다는 것은, 삶 속의 지지축, 기둥이 하나 송두리째 뽑힌다는 것과 같은 말일 지도 모른다. 그러한 부분에 있어서는 둘 모두 같았을 것이고, 다만 조제는 조금 더 미리 그것을 예감했을 뿐이다.


그들의 엔딩은 해피엔딩이 아니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러한 결말은 둘의 사랑에 있어서, 어찌보면 해피엔딩이었을지도 모른다. 츠네오는 조제를 떠남으로써 조제에 대한 사랑이 동정이 아닌 진짜 ‘사람 대 사람’으로서의 사랑이었음을 입증한 셈이었기에. 그리고 그랬기 때문에, 그런 특별한 사랑도 동정도 아닌 사랑이었기에 그들의 결말에는 이별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른다.


솔직히 말해보자면, 내가 이 영화에 대해서 어떤 평가를 내려야할지, 또는 어떤 평가를 내려도 될지에 대해서 확신이 들지 않는다. 나는 이러한 사랑을 해본 적도 없고, 그렇기에 이 영화에 대해 제대로 이해했다고 자신할 수도 없다. 가끔, 그런 영화가 있고 그런 책이 있다. 남의 이야기를, 내가 경험해보지 못했고 아마 앞으로도 경험해보지 못할 이야기를 만나는 즐거움 이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기에 드는 막막함이 앞서는 작품. 이 작품도 그랬다. 그리고 나는, 과연 언젠가는 이 영화를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까. 혹은, 언젠가는 이 영화를 다시 보면서, 이 글을 보고 민망해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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